1.  어딘가에 기록해 두지 않는다면 내 대부분의 말들은 흩어져 버린다. 먼 과거에는 일기장을 거쳐 이곳에 기록되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곧바로 여기다 기록을 하고 있다. 멋진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 내겐 어려서부터 기록의 역할을 하고 있있던 것이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녀 보기도 했지만 나에겐 곧바로 찍을 수 있는 작은 필름 카메라가 더 알맞다는 것을 알고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은 필름으로도 잘 찍지 않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다. 무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기분 좋은 때 :
    구글뮤직으로 음악을 랜덤으로 듣다가 마음에 들어서 썸즈업을 하러 어플을 눌렀는데 이미 과거의 내가 누른 엄지손가락에 불이 들어와 있을때. 비슷한 예로,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빌려주었던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새로 사서 읽다가 예전에 밑줄쳤던 부분이 선명히 떠올랐다. 다시 읽어봤을때도 여전히 같은 곳에 밑줄을 그어 두고 싶은 부분이 있다. 나는 아직 여전한 것 같아 안도한다. 

     가끔은 불분명함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일부러 궁금증을 해소하지 않고 그 모호함을 즐긴다. 이사온 지 세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종종 지하철을 반대로 탄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토익 학원을 등록하지 않고 실용음악학원 취미보컬반에 등록했다. 길가에 버려져 있는 가구들을 보면 괜히 눈이 간다. 우리는 아직 낯설지만, 춥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고 이내 그 단어의 생경함에 조금은 놀라게 된다. 아마 그 때 즈음이 가을인가 한다. 

     

  2. 2014
    summer to autumn

     


  3. 정보와 감정의 과잉.
    물욕과 소유욕과 정보욕, 각자의 감상이 너무나 넘쳐나서 피로감을 느낀다.
    아이폰 3gs 이후로 6년째, 이제는 오히려 종이 위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4.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5.  웨딩 세레모니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도 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친구를 넘어서 마치 가족같은 두 사람의 결혼.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축하하고 또 축복했다. 부지런히 그리고 정신없는 두사람의 모습이 안스러운 순간도 있었고 가장 좋았던건 우리 친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가족같이 배웅해 줄 수 있었던것. 십 년의 역사 안에서 우린 친구의 남자친구가 내 친구가 되고, 친구 가족들과 안부를 주고받는 가볍지 않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웨딩카를 꾸미고 고등학생 시절 함께 좋아하던 음악들을 모아 전해 주었다.
     틀에 박힌듯이 정형화된 혹은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들은 ‘보여주기’ 위한 곳에서 기능한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들은 보여주기 위한 사진은 아니다. 포즈를 잡고 찍은 단체사진보다 자연스런 표정이 묻어있는 일상 사진이 조금 더 실제와 닮아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진 역시 딱딱한 자세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어보니 데프톤즈를 좋아하기 시작한 횟수를 꼽아 십 년이 넘었다. 오늘의 두가지 사건은 십년동안의 역사와 관련된 일들이었구나. 2009년의 첫 데프톤즈 내한은 내가 군대에서, 더군다나 배를 타고 해외 순함훈련을 나가 있는 동안 이루어졌기에 이번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에 기필코 공연을 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첫 기타 리프를 들으면서, 이건 지난 갈증에 대한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자면, 공연은 정말 좋았다. 좋아하는 곡들을 라이브로 듣고 따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의 이면은 비로소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고민해 본다. 이렇게 버킷 리스트에 하나의 체크 표시를 하게 된다.

     

  6. 진짜 좋은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다.

    Totally Enormous Extinct Dinosaurs가 피처링한 트랙. 

    근데 그냥 TEED의 오리지널 곡같다. 

     


  7.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여러분들의 일상 속에서는 오히려 텅 빈 공허가 더 크게 느껴져
    나 역시도 어딘가를 채우고 싶으면은 다른 방법을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나 되묻게 된다.

     


  8. nymphomaniac

     볼륨 1은 유쾌했고, 볼륨 2는 무거웠다. 1편의 여러가지 비유가 참 맛깔나게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오르간 연주와 세 명의 파트너에 관한 장면에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화면 맨 오른쪽, 그러니까 재규어와 비슷하다고 묘사했던 남자의 느릿느릿한 육식동물을 따라한 옆모습 걸음걸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나에겐 그것이 일종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개그코드처럼 느껴졌었는데,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오르간-오르가즘 이라는 언어 유희도 꽤 짜릿한 유머였던 듯. 그런데 볼륨 1을 보면서는 왜 자꾸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볼륨 2에서는 무언가 너무 멀리 가 공감대가 닿지 않아 갑갑했던 느낌이 들지 않았나 싶다.
     볼륨 1을 보면서 난 조각조각 단편적인 지난 감정의 기록들을 통해 J의 행적들을 비춰보려 했다. 그다지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깨우침이라면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고 노력했던 모습들은 외려 내가 상대방에게 받고 싶어했던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라는 질문이다. 나는 받고 싶은 모습으로 베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혹자는 그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작용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여기엔 빈 부분이 자리한다. 그곳이 채워지지 못한다면 언젠간 무너지게 될 것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것이 건강한 배려였던 것일까? 나는 왜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 끝에는 그래서 앞으로는 받기 위해 주는 것을 멈추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어째서 그런 영화를 보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번쯤 다시 보면 알게 되려나.

     

  9. 체육대회. 호기롭게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거닐며 모처럼 주어진 공적인 자유를 만끽했다.
    짝피구와 발야구를 하는 녀석들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나 보여서 덩달아 나도 푸르러지는 느낌이다. 밤새 수업 준비를 했지만, 그것보단 이게 더 낫잖아.
    저 땐, 본인들이 반짝인다는 걸 알까. 그럴 리가 없지- 그보다 내게도 특별했던 오늘, 앞으로도 교직에 남게 된다면 특별이 아니라 일상적인 어느 날중의 하나로 남게 될까봐 아쉬운 마음 반.

     


  10. 이 일은 여러 장점이 많지만 일하는 시간 이외에도 따로 시간을 들여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때때로 깊은 피로감을 준다.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이 나도 생각지 못했던 내 일의 철칙이었나 보다. 이 새벽 내내 키노트를 만들면서 얼른 뒤쪽의 침대로 몸을 던져 생각없이 뒹굴거리며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고픈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 짧지 않은 것 같다. 머릿속에서 주제를 생각하고 숙성시키는 데에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들의 교집합을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쉴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워서 손가락만 까딱이고 싶다. 어떤 때는 누군갈 만나는 것도 일처럼 느껴진다. 얼른 마치고 쉬고 싶으면서도 키노트의 그림자 픽셀 길이와 트랜지션 효과 따위에 일일이 신경을 쓰고있는 날 보며 나도 참.. 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기록하기로 한다. 사실은, 이런 일기를 쓰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쓰려고 했던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숙성되고 있다-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그럼 얼른 하던거 마치고 자야지.

     


  11. 뭐든지 직접 하는게 가장 빠르다.

     

  12. ㅋㅋㅋ 와 이거 뭐냐….

    뮤직비디오로 아트하는 그들. 여전했구나-

     

  13. 일 주일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요즘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 버리는 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한참 후에서나 깨닫게 되기에 부러 예리하게 시간의 흐름을 겨누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가 일주일이 지나 버리는건 아니지만 그보다 견디기 힘든건 이러다 정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엔 지나는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진다.

    습관이란게 참 무섭다는 말은 이제 너무나 식상해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문장이지만-
    일주일 사이에 지하철을 두 번 반대로 탔다.
    당분간은 지하철 탈때 방향을 꼭꼭 확인하는 습관을 들일것이다.
    쌓인 짐 박스 안에서 손톱깎이를 찾고싶지 않아 다른 손톱깎이를 썼다.
    손톱이 이리저리 튀었다.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납할 장이 하나도 없어 쌓인 짐 박스를 풀어놓을 공간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시디를 담아두었던 박스를 꺼내 음반들을 바닥에 쌓아두고 자주 읽을 만한 책들을 박스 옆에다 나란히 세워 두었다
    그제야 내 방같은 느낌이 조금 들더라.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매우 바쁜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물론 일주일중 몇일은 바쁘지만 대부분 일정에 쫒기는 나날보다는 사이를 여유로 채우려 노력한다.
    뒤쳐지는 듯한 느낌은 싫다. 다만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이 주의 간격을 두고 조금씩 써내려간 일기-

     


  14. 집 넓으니까 정말 좋다.

     

  15. 기억할 만한 소비 : 프로젝터 구입.
    진작 좀 알아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킷 리스트는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그리고 내일모레면 정든 여기를 떠나 홍대로-